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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철학관(의로인이 오셨습니다!)/공자 말씀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 하지 말라

by 625freekick 2023.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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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나무위키

공자의 명언 "己所不欲,勿施於人" -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 하지 말라


세계적인 철학자이자 선조였던 공자는 그의 삶과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많은 지혜를 전달해왔습니다. 그 중 하나는 "己所不欲,勿施於人"라는 명언입니다. 이 명언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 하지 말라"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 명언은 모든 사람이 인간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할 미덕 중 하나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것은 상호간의 신뢰를 해치고, 사회적인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습니다. 공자는 자신의 삶을 통해 이를 실천했으며, 우리도 그의 가르침을 따라야 합니다.

우리는 삶에서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습니다. 가족, 친구, 동료, 이웃 등 여러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며 서로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하지만 때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해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자신의 이익을 얻는 것이 일시적으로 이득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관계를 손상시키고, 상대방의 반감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공자는 이러한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 하지 말라"는 명언을 전달하였습니다. 이것은 상호간의 존중과 신뢰를 강화할 뿐 아니라, 개인의 인격과도 직결되는 중요한 가치입니다.

이 명언은 우리가 자신의 삶에서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할 가치 중 하나입니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을 존중하고 신뢰를 갖는다면 서로의 관계를 더욱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명언은 인간관계에서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서로에게 존중하고 배려하는 태도를 가지면서, 자신의 가치를 존중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를 바탕으로 공자는 후대의 인류에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의 삶과 사상은 후세의 인물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고, 그의 명언들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조언과 격언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결국, 공자는 그의 삶을 통해 인류에게 자기 개발과 가정, 국가, 그리고 세상을 발전시키는 방법을 가르쳤습니다. 그의 삶과 가르침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주고 있으며, 공자의 명언들은 매 순간 우리의 삶에 큰 위안과 격려를 주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독자 여러분께서도 공자의 가르침에 귀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자신을 바르게 하고, 가정을 바르게 하면, 나라를 바르게 하는 것은 결국 인간 개개인의 태도와 행동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속적인 자기 개발을 통해 세계와 사회를 더욱 발전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공자의 가족에는 아내, 아들, 딸이 있습니다.

그의 아내는 선악이 분명한 여성으로, 그녀의 인내심과 순수한 마음은 그의 삶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공자와 함께 가정을 지켜내며, 가족의 안락과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그의 아들의 이름은 공예(孔曄)이며, 그는 공자의 사상을 계승하며, 자신의 삶을 바르게 이끌어 나갔습니다. 공예는 도덕적 가치를 중시하며, 지혜와 인내심, 선의를 강조하는 성품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의 아버지와 함께 가족을 지켜내며, 그의 삶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의 딸의 이름은 공자(孔姬)이며, 그녀는 부지런하고 섬세한 여성으로, 자녀들을 가르치며, 가정을 지켜내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녀는 그의 아버지와 함께 가족을 이루며, 가족 간의 사랑과 존중을 깊이 느껴보았습니다.

공자의 가족들은 그의 삶과 사상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그가 인류에게 가르침을 전하는 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성품과 행동은 우리에게도 큰 영감을 주며, 가족 간의 상호 존중과 사랑을 깊이 느끼게 해줍니다.

 

 

---- 공자 (나무위키 참조) ----

공자는 춘추시대 유학(儒學)자이다. 주나라의 예(禮)와 악(樂)을 정리하여 유학의 기초 경전을 정립하였으며, 이 예악을 바탕으로 하는 정치 실현을 목표로 수많은 제자들을 가르쳤다. 사실상 유학의 창시자라 볼 수 있다.

노(魯)나라에서 태어나 자랐고, 어려서부터 예(禮)에 밝았다. 30대부터 제자 양성을 시작했고, 50대에 이르러 노나라의 중도재(中都宰)[10]를 지냈는데 잘 다스렸다. 이에 노나라 정공(定公)의 신임을 얻어 지금의 법무부장관격에 해당하는 대사구大司寇의 벼슬까지 제수받았다. 중앙정계에 들어온 그는 노나라의 세 권세가인 삼환(三桓)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과업을 맡았으나 끝내 좌절되었고, 그는 실각하였다. 자신의 이상이 노나라에서 실현될 수 없음을 안 공자는 이후 여러 제자를 이끌고 13년 동안 중국 천하를 방랑하며 뜻이 맞는 군주를 찾았지만 이 역시 좌절되었다. 말년에 노나라로 귀국하여 국로(國老)의 대접을 받았으나 역시 등용되지는 못하였다. 이후 제자 양성과 고문헌 정리에 진력하다가 세상을 떠났다.